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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월간산 2016.12월호 (통권 566호) 250~253p. /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01/2016120102161.html
등산 경력 1년차, 네팔 히말라야 간잘라피크(5,675m) 정상에 서다
여행 홀릭인 나는 몇 해 전 남미 여행 중, ‘카미노 잉카’ 트레킹을 경험했다. 카미노 잉카는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트레일이다. 이를 계기로 산에 매료되어 이후 매주말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다.
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예정된 수순처럼 암벽등반을 시작했고 조금 더 높은 산, 큰 산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히말라야를 꿈꾸기에 이르렀다. 히말라야 원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매일 인터넷과 산악 잡지를 들척이며 ‘히말라야’라는 키워드로 모든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발견한 것이 ‘코오롱등산학교, 히말라야 등산과정 4기 모집’이었다. 믿을 만한 조력자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과정에 합류했다. 여기서 히말라야를 동경하는 다른 8명의 동기생들을 만났다. 이후 출국 전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이론과 실전 교육을 받았다. 더불어 감압실 훈련을 통해 고소적응까지 차근차근 준비했다.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드디어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카트만두는 ‘빛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축제 열기가 대단해서 거리마다 건물마다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튿날, 본격적인 트레킹을 위해 랑탕 히말라야 지역으로 이동이 시작되었다. 버스로 8시간을 달려 샤브루베시에 도착해 며칠 동안 중간 목표지인 강진곰파를 향해 걷고, 자고, 먹고, 또 걷는 반복의 나날이 이어졌다. 히말라야는 가히 신들의 산책로라 할 만하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주변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돌만 무성한데, 돌 틈새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하얀 솜털 머금은 에델바이스를 만나면 지친 다리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니, 그야말로 ‘산행진미(山行眞味)’가 따로 없다.
그렇게 며칠을 걷고, 오르기를 반복해서 강진곰파에 도착했다. 다음날 고소적응 차 강진리봉(Kyanjin Re·4,773m)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니 파란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정경이 참 정겹다. 꿈이 손에 잡힐 듯 점점 더 가까워지니 작은 풍경 하나, 스치는 바람 한 올이 더 특별하다.
강진곰파에서 고소적응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로 이동해 일주일간 안락한 생활이 이어졌다. 베이스캠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무료해진 나는 주변을 둘러볼 겸 인근에 조금 높이 솟은 봉우리에 올랐다. 저 멀리서 우리 그룹의 키친보이 한 명이 한참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쉬기조차 어려운 해발 5,000m대 고지대에서 무거운 물통을 짊어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먼 길을 왕복했을 청년을 생각하니 말문이 탁 막혔다. 내가 이곳에서 매일 먹는 밥 지은 물도, 양치하는 물도 저 청년이 길어왔을 테지. 나는 세수에 삼시세끼 양치질은 물론, 고소순응을 위해서는 이뇨가 중요하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커피와 차를 마셨다.
그들보다 조금 더 잘 산다는 이유로,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현지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진상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늘 미소를 머금고 고상하게 현지인들에게 배려나 예의를 보여 줬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보니 해발 5,000m 베이스캠프에서 물 귀한 줄 몰랐던 내가 진상이었다.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정이 시작되면서 머리 감는 일과 샤워는 중단했지만, 양치질만은 꼬박꼬박 하려 했었는데 그것도 그날로 그만두었다. 그날부터 나는 강진곰파로 하산할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 1리터의 물을 아껴서 나누어 마셨고, 양치는 하루에 한 번 또는 이틀에 한 번 하고, 당연히 세수는 하지 않았다. 정 꿉꿉해서 못 참을 지경이면, 손수건에 살짝 물을 묻혀 얼굴을 닦아 내는 것으로 끝냈다.
그렇게 며칠을 걷고, 오르기를 반복해서 강진곰파에 도착했다. 다음날 고소적응 차 강진리봉(Kyanjin Re·4,773m)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니 파란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정경이 참 정겹다. 꿈이 손에 잡힐 듯 점점 더 가까워지니 작은 풍경 하나, 스치는 바람 한 올이 더 특별하다.
강진곰파에서 고소적응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로 이동해 일주일간 안락한 생활이 이어졌다. 베이스캠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무료해진 나는 주변을 둘러볼 겸 인근에 조금 높이 솟은 봉우리에 올랐다. 저 멀리서 우리 그룹의 키친보이 한 명이 한참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쉬기조차 어려운 해발 5,000m대 고지대에서 무거운 물통을 짊어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먼 길을 왕복했을 청년을 생각하니 말문이 탁 막혔다. 내가 이곳에서 매일 먹는 밥 지은 물도, 양치하는 물도 저 청년이 길어왔을 테지. 나는 세수에 삼시세끼 양치질은 물론, 고소순응을 위해서는 이뇨가 중요하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커피와 차를 마셨다.
그들보다 조금 더 잘 산다는 이유로,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현지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진상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늘 미소를 머금고 고상하게 현지인들에게 배려나 예의를 보여 줬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보니 해발 5,000m 베이스캠프에서 물 귀한 줄 몰랐던 내가 진상이었다.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정이 시작되면서 머리 감는 일과 샤워는 중단했지만, 양치질만은 꼬박꼬박 하려 했었는데 그것도 그날로 그만두었다. 그날부터 나는 강진곰파로 하산할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 1리터의 물을 아껴서 나누어 마셨고, 양치는 하루에 한 번 또는 이틀에 한 번 하고, 당연히 세수는 하지 않았다. 정 꿉꿉해서 못 참을 지경이면, 손수건에 살짝 물을 묻혀 얼굴을 닦아 내는 것으로 끝냈다.
간잘라 정상을 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기로 한 날이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해가 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정오 이전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 해 뜨기 전에 하루를 시작했다.
“허억허억, 처벅처벅” 거친 숨소리와 크램폰이 눈밭에 박히는 소리만 조용히 메아리친다. 모두들 침묵한 채 고정 로프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오르는 데만 몰입한다. 경사가 가파른 설사면 구간을 오르고 나니, 순백의 하얀 눈이 펼쳐진 플라토 지역이 펼쳐진다. 여기저기 크레바스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모두들 그 위압감에 눌리지 않으려 애써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칼날 능선이 나타나고 김재수 대장의 탄성이 침묵을 깬다.
“이야! 나이프 리지가 기막히네! 멋지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기로 한 날이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해가 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정오 이전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 해 뜨기 전에 하루를 시작했다.
“허억허억, 처벅처벅” 거친 숨소리와 크램폰이 눈밭에 박히는 소리만 조용히 메아리친다. 모두들 침묵한 채 고정 로프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오르는 데만 몰입한다. 경사가 가파른 설사면 구간을 오르고 나니, 순백의 하얀 눈이 펼쳐진 플라토 지역이 펼쳐진다. 여기저기 크레바스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모두들 그 위압감에 눌리지 않으려 애써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칼날 능선이 나타나고 김재수 대장의 탄성이 침묵을 깬다.
“이야! 나이프 리지가 기막히네! 멋지다!”
잠시 눈 속 깊숙이 피켈을 고정해 놓고 몸을 기대서서 멍하니 능선을 바라본다. 칼날 능선이 끝나는 지점, 저 멀리 간잘라피크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다 왔다는 생각이 든 순간, 갑자기 숨이 막혔다. 분명 하얀 눈밭 위에 서있는데 시야가 검게 좁아지는가 싶더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 눈밭에 누워서 딱 5분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낯선 도전을 앞에 두고 한없이 작아진 나를 발견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다리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박태원 강사가 달려와서 산소마스크를 물린다. 얼마나 되었을까, 하얀 눈밭에 앉아 한동안 심호흡한 후에야 내 힘으로 두 발로 일어설 수 있었다.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간잘라피크 정상 등정을 축하합니다!”
김재수 대장의 축하가 귓가에 울린다. 그제야 양 볼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햇살, 콧잔등을 스치는 산산한 바람이 느껴진다.
하산 후 다시 강진곰파마을에 도착했다. 하산길은 오르막의 딱 반절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히말라얀 베이커리 앞마당을 빌려 텐트를 치고 머물렀는데, 그날따라 빵집의 사우니(주인아주머니를 지칭하는 네팔어)는 초저녁부터 야크 똥을 난로에 가득 넣고 군불을 때워두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전원 등정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대원들과 셰르파, 포터, 쿡, 키친 보이, 그리고 마을 주민 일부도 함께했다.
코리안 깐치, 또 다른 꿈을 꾸다
결국 그 자리에서 다리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박태원 강사가 달려와서 산소마스크를 물린다. 얼마나 되었을까, 하얀 눈밭에 앉아 한동안 심호흡한 후에야 내 힘으로 두 발로 일어설 수 있었다.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간잘라피크 정상 등정을 축하합니다!”
김재수 대장의 축하가 귓가에 울린다. 그제야 양 볼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햇살, 콧잔등을 스치는 산산한 바람이 느껴진다.
하산 후 다시 강진곰파마을에 도착했다. 하산길은 오르막의 딱 반절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히말라얀 베이커리 앞마당을 빌려 텐트를 치고 머물렀는데, 그날따라 빵집의 사우니(주인아주머니를 지칭하는 네팔어)는 초저녁부터 야크 똥을 난로에 가득 넣고 군불을 때워두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전원 등정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대원들과 셰르파, 포터, 쿡, 키친 보이, 그리고 마을 주민 일부도 함께했다.
코리안 깐치, 또 다른 꿈을 꾸다
대원들을 위해 묵묵히 일해 준 셰르파를 비롯해 키친보이까지 한 명 한 명 모두의 이름을 호명하며 노고를 치하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흥겹게 놀았더니, 잔치가 끝난 뒤 내 별명은 깐치가 되었다. ‘깐치’는 여자 막내를 뜻하는 네팔어인데, 나는 강진곰파를 떠나는 날까지 ‘코리안 깐치’로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셰르파들이 건넨 작별 인사에 나는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각자의 길을 걷겠지만, 곧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약한다.
나의 첫 히말라야 경험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어 준 조력자들은, 백전노장 김재수 대장을 비롯해 가족처럼 자상했던 양유석·박태원 강사, 셰르파 텐디, 니마, 밍템바, 빠상 누르보, 빠상 템바.
“나와 같은 꿈을 꾸며 네팔을 찾았던 8명의 멤버들 모두 단네밧(Dhannebad), 감사합니다! 마야 가르추(Maya Garchu), 사랑합니다!”
이렇게 히말라야 고산 등반을 향한 나의 첫 도전은 마무리 되었다. 고소의 두통에 시달리다 내려오니 세상은 참 살 만한 곳이라는 행복한 생각이 든다. 일상으로 복귀한 첫날, 한국에는 68년 만에 슈퍼문이 뜬다고 뉴스가 떠들썩하다. 퇴근길 멍하니 달을 바라보고 있자니,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보았던 쏟아져 내릴 듯 하늘을 수놓았던 별들과, 별들을 배경 삼아 히말라야 설산에 걸려 있던 달이 떠올라 또다시 가슴이 요동친다.
신들의 영역이라 일컬어진 히말라야는 오랜 세월 전문 등반가 외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허나 이제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히말라야! 발걸음 하나하나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기를, 늘 히말라야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나마스떼!
셰르파들이 건넨 작별 인사에 나는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각자의 길을 걷겠지만, 곧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약한다.
나의 첫 히말라야 경험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어 준 조력자들은, 백전노장 김재수 대장을 비롯해 가족처럼 자상했던 양유석·박태원 강사, 셰르파 텐디, 니마, 밍템바, 빠상 누르보, 빠상 템바.
“나와 같은 꿈을 꾸며 네팔을 찾았던 8명의 멤버들 모두 단네밧(Dhannebad), 감사합니다! 마야 가르추(Maya Garchu), 사랑합니다!”
이렇게 히말라야 고산 등반을 향한 나의 첫 도전은 마무리 되었다. 고소의 두통에 시달리다 내려오니 세상은 참 살 만한 곳이라는 행복한 생각이 든다. 일상으로 복귀한 첫날, 한국에는 68년 만에 슈퍼문이 뜬다고 뉴스가 떠들썩하다. 퇴근길 멍하니 달을 바라보고 있자니,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보았던 쏟아져 내릴 듯 하늘을 수놓았던 별들과, 별들을 배경 삼아 히말라야 설산에 걸려 있던 달이 떠올라 또다시 가슴이 요동친다.
신들의 영역이라 일컬어진 히말라야는 오랜 세월 전문 등반가 외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허나 이제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히말라야! 발걸음 하나하나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기를, 늘 히말라야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나마스떼!
코오롱등산학교 히말라야 등반과정 4기
기간 2016년 10월 28일 ~ 11월 11일(14박 15일)
대상지 네팔 랑탕 히말라야 간잘라피크(5,675m)
강사 김재수, 박태원, 양유석
교육생 강명구, 김윤성, 박건상, 백종민, 이기종, 이제훈, 차승준, 최경윤, 홍성유
기간 2016년 10월 28일 ~ 11월 11일(14박 15일)
대상지 네팔 랑탕 히말라야 간잘라피크(5,675m)
강사 김재수, 박태원, 양유석
교육생 강명구, 김윤성, 박건상, 백종민, 이기종, 이제훈, 차승준, 최경윤, 홍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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