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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끈]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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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 한 인간이 먼 길을 돌아 찾아낸 진정한 사랑과 소박한 행복에 관한 아주 낮은 이야기 – 5~6p.

()인생 20년이 지난 지금도 산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내 생애 산들은 열다섯에 와룡산을 오르는 날부터 촐라체 죽음으로부터의 생환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모습, 같은 경험이 아니었다. 어린 중학생의 첫 산행은 그저 산이, 바위가 다가와서 반겨 주었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올랐던 히말라야는 희 눈과 바위 속으로 나를 깡그리 내던지게 했다. 산에 미쳐 산밖에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 젊음의 광기가 사라져가기 시작한 것은 사회라는 더 높은 산을 만나면서 더 깊숙한 크레바스 자락으로 빠져들 때부터였다.

삶의 수단으로서의 산, 세속의 산을 만났을 때 산은 결코 하얀 산으로 머물지 못했다. 한때는 맑고 밝은 영혼의 산으로 다가왔던 그 산이, 세월과 현실의 때를 입으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어둠의 고독으로 다가왔다.  

 

# 개정판에 부쳐 – 9p.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 사고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의 팔부능선에서 바라본, 먼 길을 돌고 돌아 찾아낸 소박한 행복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우리 인생의 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산을 오르는가. 그런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촐라체 등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히말라야가 가득하다. 그래서 내 삶의 고도는 늘 높다.

 

# 여기는 촐라체 정상

_ 113일 새벽 3, 베이스캠프 -18~19p.

어둠 속에서 길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길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길이 없었으므로 우리가 발을 딛는 곳은 그 순간 길이 되었다. 흔적도 없이 금방 사라지고 말 그런 길이었다. 강식은 휘파람을 불었고 나는 이따금씩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렸다. 강식의 휘파람 소리가 끝나자 어디선가 화답이라도 하듯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휘파람을 불어 새에게 답신했다. 새는 낮에는 보이지 않았고 밤에만 소리로 들렸다. 어쩌면 고대 전설에 나오는 죽지 않는다는 새 시무르그(Simurg)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산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두 걸음을 나아가면 두 걸음을 물러났다. 나는 두려움에 직면했다. 두려움이 앞설 때마다 시무르그를 떠올렸다. 나는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산을 노려보았다. 헤드랜턴 불빛이 산을 향해 뻗어 나갔다. 산은 아주 조금씩 길을 내주었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 알피니스트(Alpinist)는 발길을 돌려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법칙이다. 하지만 나는 뒤로 돌아설 수 없었다. 그때쯤 길은 내 뒤에도 없었고 앞에도 없었다. 오로지 저 암벽 꼭대기, 내가 올라야 할 촐라체 정상에 있었다.

 

# 우리 사이, 마주잡은 끈 하나

_ 116일 오후 4, 죽음의 블랙홀 - 69~70p.

휘리릭, 소리가 홀리듯 내 귀를 자극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악마의 입구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제멋대로 내동댕이쳐졌다. 차가운 하늘이 얼음 눈 사면이, 저 아래 수백 수천 미터 절벽이 뱅그르르 돌았다. 짧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상황이 내게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멋대로 굴러가던 몸이 탁 멈추었다. 거꾸로 엎어진 상태에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무엇인가 내 몸을 꽉 옥죄고 있었다. 자일이 가슴과 목을 짓누르는 바람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 나의 두 다리와 너의 두 눈

_ 117일 오전 10, 또 다른 추락 – 93~94p.

일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기력이 없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멍하니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젠장,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한심했다. 스스로에 대해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산에 미쳐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쯤 집에 있다면 편안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다시는 산에 오지 말아야지. 살아 돌아간다면 산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으리라. 별의별 생각이 뒤엉켜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야 했다.

 

_ 117일 오후 5, 시야 상실 – 106p.

밤은 참으로 길고 또 길었다. 너무 추워 잠이 오지 않았다. 강식은 무엇을 하는지 쥐 죽은 듯 누워 있었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확인할 기력도 없었다. 자정이 되자 강식은 끙끙 신음을 흘렸다. 나 역시 턱이 떨리며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강식과 나는 그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기합을 넣었다. 그건 한 인간이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바람이 몰아쳤다. 신음 소리가 들렸다. 기합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상대가 흘리는 신음 소리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정신이 깊은 나락 속으로 가물가물 해질 때마다 상대의 기합 소리가 명료하게 몸을 흔들었다.

 

#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_118일 오전 11, 처절한 생환 -117p.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보가 터졌다. 왜 웃음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우스웠다. 산에 미쳤던 세월이 우스웠고 크레바스에 빠진 내가 우스웠다. 그렇게 한참 웃다 보니 얼굴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눈은 그치지 않을 모양이었다. 또다시 기기 시작했다. 다리도 손가락도 잃고 싶지 않았다. 두 학기만 남겨 둔 학교도 무사히 마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했다. 그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보다 낮은 곳으로,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는 것이다.

 

_ 121일 오전 9, 헬기 소리 – 129p.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쓸쓸한 얼굴로 풍경 속에 시선을 놓아두었다. 봉우리들 사이로 내가 올라야 할, 오르지 못한 산들이 내려다보였다. 기분이 착잡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살았구나. 드디어 살았구나......”

 

 

 

#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137p.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높이며 상승했다. 창밖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지난 10일간의 사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비행기가 출발하자 이번에는 다른 걱정이 스멀거리며 나를 괴롭혔다. 설마 손발을 자르게 되지는 않겠지? 가족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앞으로 나의 등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얗게 눈 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을 뒤로하고 비행기는 힘차게 미끄러졌다.

 

_ 우리는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 150~151p.

통증이 몸을 엄습할 때마다 나는 살아 돌아온 걸 저주했고 히말라야와 그 산들을 증오했다. 산에 미쳐 살았던 지난 세월을 후회했으며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허리는 끊어질 듯했고 골절된 갈비뼈와 피켈에 맞은 어깨, 동상에 걸린 손발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아우성쳤다.

 

#하늘로 날려 보낸 여덟 손가락

_ 하느님, 이대로 손가락을 잘라야 하나요? – 154~155p.

손가락을 절단한 뒤 아이들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다가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잘랐다고 하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왜 그 먼 곳까지 날아가 산을 올라야 했느냐고 묻는다면? 자라는 동안, 아빠의 손가락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될 게 뻔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 해도, 나는 마땅히 그들을 이해시킬 말을 알고 있지 못했다.

 

# 아직 엄지손가락이 남았다 -213p.

생각해 보면 등반은 마약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손을 잃은 건 어쩌면 하나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가는 내 등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보통의 히말라야 등반은 분명한 끝이 존재한다. 14좌를 비롯해 오를 수 있는 높이의 봉우리들은 다 정해져 있다. 실제로 많은 산악인이 14좌 완등 이후 은퇴를 감행했다. 그러나 등로주의를 따르는 등반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길, 힘든 길은 무한대로 존재한다. 등로주의의 끝은 오로지 차가운 죽음뿐이다.

내가 촐라체를 무사히 내려왔다면?

정답은 하나다.

나는 지금쯤 탈레이사가르 북벽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 에필로그_ 다시 촐라체로

_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234p.

산은 움직임이 없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 뿐이다. 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을 맞는다. 따스한 빛과 바람을 이용해 인간을 끝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정상을 허락하기도 하고 때로는 휘몰아치는 강풍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등반은 고독과의 싸움이다. 그 고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등반의 성패를 좌우한다. 또한 등반은 화합을 실험하는 장이다. 예민해지기 쉬우므로 서로 잘 배려해야 한다. 정상 등정이란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신을 만나는 행위이다. 신이 허락을 하고 자연이 허락해야 정상이 예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삶의 한 여정일 뿐이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바로 이거다.’ 하는 누구나 수긍할 만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나왔을 뿐이다. 어쩌면 등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끝없이 오르는 행위가 등반이다. 그것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런 면에 있어서 우리가 산을 오르는 행위나 인생을 살아가는 행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인간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끈>

박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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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저자 : 박정헌
출판 : 열림원 200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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