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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수기 [手記]

[사람과산 SEP 2019]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위한 첫걸음, 킬리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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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사람과산 2019 09월호 (Vol. 359)

 

해외등반_ 아프리카 최고봉 탄자니아 킬리만자로(5,895m)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 우후루 피크(5,895m) 등정에 성공한 신차원정대!

킬리만자로 신차원정대

"누나... 춥고 배고프고 졸려요..."

"하섭아, 안 되겠다. 우리 그냥 버스 탈까?"

새벽 4시, 35km 지점을 막 지난 지점이었다. 터덜터덜.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도 연신 감겼다. 엎친 데 덮친 격, 몇 해 전 부상이 있었던 발목까지 시큰거려오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회송 차량에 몸을 실었다. 킬리만자로 원정을 한 달여 앞두고 마지막 훈련 및 단합을 위해 참가한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 대회(66km 코스)'에 나간 우리는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훈련에서 삐끗한 이후, 우리는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지고 남은 기간 더 열심히 체력 훈련을 했다.

 

대망의 출국일, 공항에서 둘만의 조촐한 출정식을 했다. 신하섭의 '신', 차승준의 '차' 두 명뿐인 대원의 이름을 따서 '킬리만자로 신차원정대'로 작명하고 지인들에게 등반 계획 보고와 짤막한 인사말을 남겼다. 자동차 판촉 행사 같은 다소 촌스러운 원정대 이름을 가지고 드디어 킬리만자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산에 대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산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짐과 더불어 산을 향한 꿈도 꼬리를 물며 다양해졌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7대륙 최고봉에 올라보고 싶다는 꿈이 스멀스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 여정의 첫걸음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택했다.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운행기록

일정 등반 운행(고도) 숙영지
1일차

오전: 장비 점검 및 일정 시뮬레이션
오후: 운행

10km
(1,800m~3,000m)

마차메 캠프
(Machame Camp, 3,000m)

2일차

오전: 운행
오후: 휴식 및 고소적응 하이킹

6km
(3,000m~3,800m)

시라 캠프
(Shira Camp, 3,800m)

3일차

오전: 운행 (라바타워, 4,630m)
오후: 운행 (고소적응 후 고도 낮춰 숙박)

10km
(3,800m~4,630m~3,900m)
바란코 캠프
(Baranco Camp, 3,900m)
4일차 오전/오후: 운행

10km
(3,900m~4,673m)

바라푸 캠프
(Barafu Camp, 4,673m)
5일차

(자정부터) 야간 운행 후 정상 등정
오후: 하이캠프 휴식 후 하산

17.5km
(4,673m~5,895m~3,100m)

음웨카 캠프
(Wmeka Camp, 3,100m)
6일차

오전: 하산 완료
- 음웨카 게이트(Wmeka gate, 1,900m)

10km
(3,100m~1,900m)
 

 

평화로운 시라 캠프(Shira Camp, 3,800m) 전경

폴레폴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리아! 폴레폴레"

"오케이 오케이"

가이드 필벗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폴레폴레'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뜻으로, 고산 등반 경험이 많지 않은 등산객들이 초반 오버 페이스로 등정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현지 가이드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넷째 날까지 하루 평균 10km (고도차 800~1,200m)를 이동하며 별 탈 없이 운행 계획에 맞는 평화로운 등반이 이어졌다. 이전에 5,000m가 넘는 등반지를 대원으로서 오른 경험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계획 수립부터 루트 선정까지 인도어 클라이밍 시뮬레이션을 모두 도맡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그저 감사했다.

 

여유 있게 시라 캠프에 도착해 함께한 멤버들과 가무를 즐기며 팀워크를 돈독하게 쌓았다.

 

마지막 캠프를 향해 이동 중인 신차원정대 앞으로 포터들의 기나긴 이동 행렬이 펼쳐져 있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입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포터를 동행해야 한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 관목 지대, 알파인 사막, 만년설 빙하 지역까지 아프리카의 생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면 구름과 대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매일 밤이면 하늘을 바라보며 남반구의 별들이 나에게 쏟아지니 황홀경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등정 전야, 그날 저녁 바라푸 캠프(Barafu Camp, 4,673m)에는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신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지금 이 순간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자!"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꼴깍꼴깍 침 삼키는 소리와 차갑고 메마른 바람만이 공간을 묵직하게 채웠다. 잠시 후 모두의 함성이 울리며, 정상을 향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가자 킬리만자로!! 와아!!"

 

신차원정대가 알파인 사막 지대에 접어들었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 관목 지대, 알파인 사막, 만년설 빙하 지역까지 아프리카의 생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킬리만자로 바라푸 캠프(Barafu Camp, 4,673m). 정상 공격을 시도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캠프.

 

극한의 추위, 우후루피크 등정

 

"하아... 너무 추워..."

"누나, 여기 따뜻한 물 마셔요."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영하의 추위에 팔다리의 감각이 무뎌져 갔다. 나도 모르게 걷다 주저앉길 반복했다. 하섭이가 건넨 레몬과 꿀을 탄 따뜻한 물을 마시며 잠시 몸을 녹였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만 버티면 곧 나아질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악물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자동으로 폴레폴레가 되었다.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 5,745m) 직전,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못 볼 인생의 일출이었지만 극한의 추위 속, 가만히 서서 아름다운 일출을 바라볼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오전 7시 20분, 드디어 정상 우후루 피크(5,895m)에 도착했다. 정상부는 만년설은 많이 줄어있어 일부 지역만 눈이 덮여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높은 곳인 킬리만자로 정상에 다다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줄 알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내려가야지...'였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밤새 체온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상당히 소진한 탓에 몸도 마음도 하산을 재촉했다. 정상 등정 인증 사진을 찍고 출발점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노 모어 폴레폴레"

가이드가 더 이상은 천천히 걷지 말고 빨리 가라고 지시했다. 비몽사몽 졸음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하산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밤의 베이스캠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급기야는 술 취한 사람마냥 휘청휘청 걸으며 만신창이로 가까스로 캠프에 도착했다. 텐트 도착 직후,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돌아오고 눈을 뜨니 가이드가 다시 하산을 재촉했다. 곧바로 음웨카 게이트(Wmeka Gate)까지 운행을 시작했다. 이튿날이 돼서야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킬리만자로 바란코 캠프(Baranco Camp, 3,900m) 뒤로 정상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등정 인증서가 손에 쥐어졌다. 신차원정대, 킬리만자로 등정 성공! 고산에서 내려오니 세상은 참 살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킬리만자로에서 보낸 일주일을 돌아보니 등정의 기쁨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더 감사한 날들이었다. 등반 중에는 식수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당연히 전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 휴대폰은 여러 개의 보조배터리를 아껴가며 사진을 찍는 용도로만 소중히 사용했다. 매일 아침 한 잔씩 마시는 커피도, 내 것 인양 공기처럼 사용하는 빛과 전기도, 양치할 때 콸콸 틀어놓는 깨끗한 수돗물도,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었다. 산에서는 모든 것들이 정말 귀중한 자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다시금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를 배경으로 운행 중인 신차원정대. 고도가 오르면서 점차 얼굴이 붓고 피곤한 모습이다.

 

 

진정한 동물의 왕국

 

킬리만자로 등정을 마치고 혹시나 싶어 남겨두었던 이틀의 여유 일정은 어린 시절 동물의 왕국에서만 보던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들을 대자연에서 직접 만나는 데 쓰기로 했다. 나는 공인된 가이드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타랑기레(Tarangire) 국립공원과 응고롱고로(Ngorongoro) 국립공원 두 곳을 돌아보는 투어를 예약했다. 사파리 투어 예약은 현지 트레킹 여행사에서 정보를 찾아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타랑기레(Tarangire) 국립공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정차한 지프차 위에서 풍광을 즐기고 있는 필자.

 

지프를 타고 국립공원 내부로 진입하니 살아 숨 쉬는 '라이온 킹'의 영화 캐릭터들을 만난 것 같았다. 지프차가 다가가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원숭이와 코끼리,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는 얼룩말과 마사이 기린, 평원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이동하는 버팔로 무리까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생생한 풍경이 펼쳐졌다. 방금 사냥한 먹잇감을 들고 창공을 맴도는 맹금류가 머리 위로 맴돌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사자와 치타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여기가 현실인지 영화 속인 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방금 사냥한 먹잇감을 들고 창공을 맴도는 위세 등등 맹금류.



두 마리의 누(Wildebeest)가 서로 시비를 걸며 투닥거리다 자리를 뜨려던 지프차의 시동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흑백의 매혹적인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이 슬픈 눈으로 무언가를 응시 중이다. 배가 고픈 걸까?



사랑에 빠진 듯 정겹게 나란히 초원을 거니는 두 마리의 얼룩말.



익살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는 사바나 원숭이. 나무 위에서 너무도 편안하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은 사실이 아닐 것만 같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무더위를 피해 물웅덩이에 모여 몸을 식히고 있는 코끼리 가족.

 

INFO_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5,895m)는 스와힐리어로 '반짝이는 산'이라는 뜻이다. 탄자니아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 최고봉으로 암벽 및 빙벽 등반 없이 도보만으로 정상인 우후루(Uhuru)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다. 1년 내내 입산이 가능하지만, 건기인 1~2월과 7~9월이 등반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다.

 

정상까지 등반 가능한 루트로는 마랑구(Marangu), 마차메(Machame), 롱가이(Rongai), 레모쇼(Lemosho), 시라(Shira), 음브웨(Umbwe) 등의 루트가 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는 마랑구 루트로, 일명 코카콜라 루트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코스다. 마랑구 루트는 산장에서 숙박하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필자와 신하섭 대원은 킬리만자로 만년설 봉우리를 바라보며 걷는 일정이 많은 마차메 루트를 선택했다. 마차메 루트는 캠프에 머물며 텐트 숙박으로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다.

 

 

글·사진  차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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