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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믿는 이에게 바친다.
<책 머리에, 안도현 시인이 독자들에게 건낸 글..>
■ 리뷰
안도현 시인의 상상력을 탄생한 우리 시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인생의 9할을 바다에서 보내는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른다. 연어들의 삶은 스스로 빛나기 위해 자기만의 어둠을 헤쳐 나온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거친 폭포수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은빛 연어. 희망을 좇아 고뇌하는 은빛 연어. 제 한 몸을 내던져 은빛 연어를 보듬고 지켜내는 눈맑은 연어. 그들의 사랑과 외로움, 괴로움, 보고 싶음에 인간사의 애환이 묻어난다. 그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연어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초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은빛 연어가 되어 내 삶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연어, 라는 그의 동화 속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그의 동화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우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노력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는가. 한숨을 깊이 내쉬는 초록강의 울음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는가. 과연 우리는 낚싯대를 들고 탐욕스럽게 연어를 바라보는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카메라를 들고 여운을 지닌 아름다운 인간이 될 것인가.
■ 본문 중에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 9p.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눈,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보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입맞춤이 뜨겁고 달콤한 것은, 그 이전의, 두 사람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기 직전까지의 상상력 때문인 것처럼. - 11p.
이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 오직 혼자 밖에 없다는 외로움. 외로움은 두려운 게 아니라 슬픈 것이다. - 20p.
그리움, 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 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대내야 하는 거래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 39p.
작은 돌멩이 하나, 연약한 물풀 한 가닥, 순간순간을 적시고 가는 시간들, 전에는 하찮아 보이던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보물처럼 여겨졌다.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 44p.
그때 강은 마치 흐름을 멈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흐름을 멈춘 강이란 이 세상에 없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속이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 54p.
"카메라가 뭐죠?"
"말하자면 시간을 찍는 기계야."
"점점 어려워서 잘 모르겠는걸요."
"네가 카메라를 가진 인간을 아직 보지 못해서 그럴 거야. 나는 카메라를 가진 인간들을 믿고 싶어. 알고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거든." - 73p.
"사무친다는 게 뭐지?"
"아마 내가 너의 가슴 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거야."
"무엇으로 맺힌다는 거지?"
"흔적... ... 지워지지 않는 흔적." - 109p.
<연어>
안도현 지음
문학동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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